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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사생 "엑스페리먼트" 영화리뷰, 본성으로 되돌아 가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 맘대로 영화 리뷰, 영사생

by borntobe 2023. 7. 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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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를 통한 "영사생". "영화를 통한 사소한 생각"들을 시작합니다. 

 

이 영화는 폭력성이 높은 영화로 다소 자극적입니다. 시청에 유의 하시기 바랍니다.

 

 

 

스릴러의 탈을 쓴 사회심리학 영화의 수작, 엑스페리먼트(The Exeperiment)

  두 번째 영화 리뷰는 오래된 영화이지만, 영화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지금껏 수작으로 뽑히는 엑스페리먼트(올리버 히르비겔 감독, 2002년 作)다.  어릴 적 TV를 통해(아마 OCN ?) 접한 이 영화의 매력은 놀라웠다. 늘 그렇듯이 이 영화도 시작이 아닌 중간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긴박한 심리묘사와 신선한 소재로 영화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영화가 끝난 후 감독이 누구인지, 배우가 누군지, 전체 영화는 어디서 볼 수 있는지 바로 찾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큰 맥락은 한때 유행했던 '오징어 게임', '머니 게임'과 비슷한 결이라고 보면 된다. 14일간 폐쇄된 공간에서 지내야 하며, 죄수와 간수로 역할을 나누어 지내는 것이다. 다만 승자가 상금을 독식하는 것이 아닌 모든 사람이 균등하게 보상금을 받는 것으로 단순히 자신의 역할만 다하면 되는 것.

이 실험은 연출된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하지만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사회가 돌아가는 원리. 권력을 가진 자들, 힘을 가진 자들의 비이성적인﹒비윤리적인 행동이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라면 꼭 볼 것을 추천한다. 물론 그 사람들을 옹호하는 것이 절대 아니지만, 어떻게 해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조금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엑스페리먼트(2002) 포스터

엑스페리먼트(2002)에 대한 고찰 및 간단한 줄거리

  기자인 주인공은 어느 날 실험 모집 공고를 보게 된다. 14일만 간수, 죄수 역할극 실험에 참여하면 4000 마르크를 준다는 것이다. 기자로서의 촉과 한탕 하려는 마음에 타렉파드는 지원하게 된다. 그렇게 모인 인원들은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하여 간수/죄수로 나뉘게 된다. 

 

  실험이 시작된 초반에는 다들 웃고 떠들며, 즐겁게 지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늘 그렇듯이 사람들 사이에는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문제는 이들 사이에서 생긴 '문제'가 다른 권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났을 때 문제가 생겼다. 같은 죄수들끼리, 같은 간수들끼리야 문제가 생긴다면 이들은 그냥 말로 풀어냈을 테지만, 다른 관계 속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첫 사건은 소등 시간 이후에 죄수들이 웃고 떠들자, 간수들은 처음으로 푸쉬업이라는 단순한 처벌을 내린다. 하지만 다음 사건들은 점점 큰 사건으로 변하게 되고 이에 따른 처벌도 점점 수위가 높아진다. 간수들은 간수의 역할로서 죄수들을 관리하기 위해, 점점 더 다양하고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이에 상응해 죄수들은 더욱 반발심이 심해지고, 불합리함을 느끼게 되며 두 계층 간의 갈등은 심화된다.

 

  시간이 갈수록 사회에서도 허용되지 않는 폭력이 자행되고 사태는 심각해져 간다. 이에 실험 관리자들은 실험을 중단하려 하지만 이미 역할극에 취해있던 간수들은 관리자들까지 감금하며 더이상 실험이 아닌 실험을 계속한다. 결국 폭력은 폭력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한 주인공은 간수들에게 반격하며 실험장을 탈출하게 된다.

엑스페리먼트(2002) 스틸컷1
엑스페리먼트(2002) 스틸컷2

엑스페리먼트가 하고자 하는 말

  모든 관계에는 고저(高低)가 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동등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가족, 직장 동료, 클라이언트 모두 다른 권력을 가지고 있다. 유일하게 그나마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존재는 친구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과 당신 친구와의 사이가 정말 동등하다'고 생각하는가?

 

  동물인 우리는 남을 나와 다른 존재로 인식하고, 상대방을 나보다 강한지 약한지 본능적으로 구분하는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다. 이는 모든 동물의 습성이 그렇듯 강함에는 숙이며, 약함에는 군림하려 하며 '효율적'으로 생존하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성이 있는 우리는 폭력적인 동물의 본성을 잠재우고 사회화를 입힌다. "인간은 각기 다르지만, 모두 동등하다"라는 평화로운 사상을 주입시킨다. 이로써 우리는 어긋난 권력(관계) 속에서도 동등하다고 사고하며 의젓한 생활을 해나가는 것이다.

 

  이때 권력이라는 트랩으로 동물의 본성이 다시 고개를 내민다. 권력을 통해 다시 '효율적'인 생존을 꾀하게 된다. 같은 '나'로 인지하는 나와 같은 부류는 동등하다 느끼지만, 나와 다른 이들에겐 한없이 무자비한 존재가 된다. 

 

왜 권력이 동물의 본성을 드러나게 하는 것일까?

 

  누군가를 강제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다는 것은 너와 나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회화를 통해 망각하고 있었던 '차이'를 사회적인 힘인 권력을 통해 다시 느끼게 되는 것이다. 단어부터가  '차이' 라는 것 자체가 동등함과는 거리가 있다. '차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우리는 '동등'이라는 단어를 흩뿌리게 된다.

 

'너와 내가 다른데, 같다(동등하다)고?'

  자, 어디서 많이 들어본 대사 같지 않은가? 왜 항상 콘텐츠에서 나오는 기득권이 이런 말을 하는지 유추해 볼 수 있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남들과 '차이'가 극명하게 보이는 권력을 가질수록 사회화는 쉽게 벗겨지게 되고 본성에 다가가는 것이다. 동물적 본성에 다가간다는 것은 일차원적이고 이기적(생존)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이기에 서슴없이 범죄를 저지르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나'와 다른 '그 외'이기에.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권력의 늪에 빠지지 않을까?

일탈하지 않아야 하기에 자제력이 높아야 하며, 이타적이어야 하기에 공감 능력이 발달 되어 있어야 하며, 앞의 두 능력을 이해, 발휘해야 하기에 지능이 높아야 한다. 자제력, 지능, 공감 능력. 벌써부터 높은 스펙이 필요할 것 같지 않은가? 어쩌면 이렇게 필요 조건이 어려운 것을 봐선 사회 저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들이 왜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원인을 알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에게, 일으킬 사람들에게 이러한 교육을 하면 될까? 또 교육을 한다고 될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것은 마치 완치 할 수 없는 유전병과 같다. 완치할 방법을 알고 있으나 완치할 방법을 실현시킬 방법이 없는 것.

 

  그렇다고 '완치할 수 없다고 해서 사회를 포기할 것이냐?'라는 말에는 나는 'NO'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사회화라는 장치를 약처럼 사용하고 있다. 획기적인 치료법은 없겠지만, 점점 호전된다는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더이상 나에게 '불치병'은 아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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