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를 통한 사소한 생각. "영사생" 시작합니다.
이게 다 널위한 거였어
'굿바이 레닌'은 서독이 동독을 흡수 통일하던 순간 동독을 지지하던 아픈 어머니를 위해 거짓말을 하는 아들과 주변인들의 이야기다. 한국 영화로는 간 큰 가족이 매우 비슷한 플롯을 가지고 있다. 감독은 시나리오를 먼저 구상했다고는 하나, 이 업계가 그렇듯 대중들의 평가는 차가울 뿐이다.
우린 자신의 이익이 아닌 상대방을 위해 거짓말을 하곤 한다. 어린아이의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갔을 땐, '아빠는 외국으로 돈 벌러 갔어.' 환승이별로 연인과 헤어질 땐 '더 이상 누굴 만나고 싶지 않아.', 재능이 없는 지인이 만든 작품을 보곤 '오 잘했는데? 어떻게 했어?' 이처럼 단순히 남을 속여 이익을 보겠다가 아닌, 상대방이 상처받게 하지 않기 위해 하는 거짓말이 있다.
어릴 적 아버지가 들려주신 말 중에, 떠오르는 말이 하나 있다. 예전에 집 나간 강아지나, 버려진 강아지가 생각보다 동네에 많았다. 그땐 순수한 마음으로 강아지를 쓰다듬으려 하면 항상 하시던 말이 있다.
끝까지 책임지지 않을 거면, 쓰다듬지 말아라.
어린 내가 강아지를 쓰다듬는 그 순간에 대해서는 분명 모두에게 이로운 방향일 것이다. 각자 스킨십에 대한 긍정적인 화학적 반응을 일으킨다. 문제는 그 이후다. 집에서 강아지를 키울 수 없는 나는 그 순간만 강아지를 '이용'하고 떠난다. 하지만 쓰다듬어진 강아지는 더 쓰다듬어지길 원하여 어린 나를 따라온다.
순간 강아지 자신을 키워줄 것만 같았던 인간이 매몰차게 자신을 버린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상대방을 더 비참하게 하려면, 높은 곳에 올려놓은 뒤 떨어트리라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쓰다듬어지기 전의 상실감보다 쓰다듬어진 후의 상실감은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 덕분에 선의의 거짓말에 대해선 대체로 부정적인 생각이다. 물론 너무 어린아이에게 돌려 말하는 것은 지지하는 바이다. 하지만, 그 진실은 언제 아이에게 알려줄 것인가? 8살? 10살? 15살? 20살? 정해진 기준은 없다. 다만 진실을 말해줄 화자가 '지금쯤이면 됐겠지'라는 판단이다. 반대로 생각해 본다면, 청자는 8살, 10살, 15살, 20살 중 어느 날 갑자기 해외에 있다고 생각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죽었다는 말을 듣게 된다. 기간에 따라서는 10년 이상 살아있다는 아빠를 고대하던 아이는 얼마나 큰 상실감을 가지게 될까.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선의의 거짓말은 청자 자신이 불편하지 않기 위한 기만에 가깝다고 본다. 상대방이 진실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지 안 되어있는지를 본인의 기준에서 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방은 항상 준비가 되어있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모든 주변을 통제해 죽을 때까지 선의의 거짓말을 한다면, 이것은 기만인가. 배려인가.
독일이 분단되어 있던 시절, 아버지가 서독으로 망명하자 어머니는 열렬한 동독 당원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방벽 제거 시위에 나간 아들을 보고 쓰러지게 된다. 어머니가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사이 동독은 서독에 흡수통일 되고 만다. 통일된 이후 깨어난 어머니는 시한부의 삶을 가지게 되었으며, 큰 충격이 있을 시 심장마비로 사망할 수 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열렬한 동독 지지자였던 어머니를 위해 아들은 서독화 되어 버린 주변 환경을 예전의 동독으로 바꾸며 일어나는 헤프닝을 다룬 영화다. 전체적으로 코디미한 코드가 깔려있다. 온 가족은 물론 이웃들까지 섭외하여 어머니를 속이지만, 결국 집 밖으로 나온 어머니는 레닌 동상이 철거되는 장면을 보게 된다. 다행히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마지막까지 거짓말을 한다. 반대로 동독이 서독을 흡수함을 조작 방송하여 보여준 것이다. 시간이 지나 결국 어머니는 운명하시게 되고, '세상에 뿌려달라'는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로켓에 담긴 어머님의 유해가 하늘에 터지며 끝난다.
영화의 내용처럼 큰 충격을 받으면 사망에 이를 수 있거나 하는 특수한 경우가 있을 순 있겠다만, 말 그대로 특수한 경우다. 우리의 삶에서는 거짓말을 하는 경우는 대부분 큰 이유가 없다. 상대방이 실망할까 봐, 상대방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서, 등 상대방을 위한 '나'의 배려다.
이런 행위는 작금의 세태의 원인 중 하나이지 않을까. 우리 아이가 다칠까 봐, 우리 아이가 상처받을까 봐 치맛폭에 감싸 안아 아이를 키운다.
이런 보호의 미명아래 자란 아이들은 말 그대로 온실 속의 화초다. 부모라는 보호막이 없어지는 시점부터 상처를 받고, 후회를 하며 경험하고 배운다. 그렇게 늦은 시간이 지나서야 진정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나잇값 못한다는 것이 서로를 잘못된 방법으로 사랑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시간을 빼앗는 것은 아니었을지 다시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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