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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사생 "미스터 노바디" 영화리뷰, 선택이란 무엇인가?

내 맘대로 영화 리뷰, 영사생

by borntobe 2023. 6. 30.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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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를 통한 "영사생". "영화를 통한 사소한 생각"들을 시작합니다. 

 

 리뷰글이긴한데... 영화를 본 후에 볼 것을 추천한다.

리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왜 미스터 노바디를 골랐는가?

 

첫 영화 리뷰를 미스터 노바디로 정한 것은 역시나 최애 영화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매해에 수천 개씩 쏟아지는 영화는, 잘못 선택하게 된다면 가끔 시간이 아까울 때도 있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내용이면 내용, 미장센이면 미장센, 거기에 연출과 연기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다.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선택이 삶의 방향에 미치는 영향을 감독만의 시선으로 그려낸 영화다. 요약한 것처럼 내용은 쉽지 않다. 세상이 힘든 시기이든, 평화로운 시기이든 어떤 개인의 상태는 외부 환경의 상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내가 웃고 있을 때 남은 울고 있을 수 있고, 내가 울고 있을 때 남은 웃고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시기보단 본인의 시기가 어디쯤이냐는 것.

 

내가 만약 무슨 일에 대해 고민이 있다면, 지금이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이 된다면 시간을 내서 한 번 볼수 있는 영화다.

영상미도 상당하니 예쁜 것 좋아하는 사람들은 꼭 보길 추천한다!

 

 

이 영화에 대한 간단한 줄거리와 고찰

우선 고찰이라는 고급 어휘를 써봤다. 내가 어릴적일 때야 많이 쓰는 단어였지만, 지금은 뭐.. 

앞서 소개한 것처럼 지금부터는 영화를 본 후에 읽는 것을 추천한다. 이 글을 읽으며 내가 생각한 것, 당신이 생각한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이 생각한 것을 공유하면 좀 더 좋을 것 같단 말이지.

 

시작은 유일하게, 유한한 생명을 가진 '노바디'에 대한 뉴스로 시작된다. 과학의 발전으로 모두가 무한한 생명을 가지게 된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과학의 혜택을 미처 받지 못한 주인공인 것이다. 이런 특이성, 희귀성은 온 세상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이에 주인공의 연대기를 제작 위한 과거 회상을 하게 된다. 

 지금과는 너무나도 다른 유한한 노바디의 기억. 그런데 듣다 보니 이상한 점이 나타난다. 분명히 엘리스와 결혼을 했는데, 진과 결혼을 했다고 하지 않나. 아버지와 헤어졌다고 했는데, 다친 아버지를 샤워시키지 않나. 같은 시간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기억해내고 있는 것이다. 

노망인 건지, 장난인 건지.

 

그렇다. 주인공 '노바디'는 어릴 적 9살의 주인공이 만들어 낸 선택지의 최종 결과 중 하나였던 것이다. 행복한 부부 밑에서 태어난 주인공은 계속 행복할 줄만 알았지만,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엄마 아빠의 다툼으로 결국 부부는 이혼하게 된다. 다행인 것은 부부는 각자 아이를 키우기를 원하자 어찌할 도리 없이 아이의 선택에 맡기기로 한다. 

 

주인공은 아빠를 선택하지만, 엄마를 마지막으로 배웅하는 과정에서 엄마가 탄 기차를 따라 쫓아가게 된다.

 

이 짧은 순간, 주인공은 엄마와 같이 살기 위해 더 열심히 달릴지, 아니면 이대로 멈출 것인지, 아니면 무언가가 날 방해할 것인지.

선택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각각의 선택을 하게 되면 그 안에서 또 다른 선택을 하고. 또 선택을 하고.

 

선택에 대한 다양한 순간들이 설명 없이, 순서가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는 영화다. 감독이 의도한 대로 의도를 파악하기 전에는 영화를 너무나 헤매는 것이 이 영화의 맛이라고 할 수 있겠다.

 

미스터 노바디 트레일러 캡쳐본

미스터 노바디의 결말, 진짜 내용? 선택의 중요성?

대부분의 리뷰와 평들은 선택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더욱 깊게 들어가 보려고 한다.

 

우리는 선택을 하며 항상 이것이 최고의 선택이길 원한다. 또 최고가 아니면 최선이길 바라며 선택을 하기까지, 결과가 나오기까지, 결과가 나온 후까지 후회를 한다. 혹은 어떠한 선택이 최고의 선택임을 알고 있지만 우린 각자만의 핑계를 대며 좋지 못한 결과를 내는 선택을 하곤 한다.

 

두 가지 사례는 선택의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으로 자기의 이익을 위한 이기적인 관점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최고의 선택이라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이득이 될 최고의 선택이다. 내가 행복하고, 내가 웃고, 내가 돈을 벌고, 내가 유명해지고. 무언가 나의 욕구를 최대치로 충족시킬 수 있는 선택을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100을 얻지 못하면 99라도, 아니면 90이라도, 아니면 20이라도, 아니면 1이라도. 

반면 내가 피곤하거나, 귀찮거나 할 때는 좋은 선택지가 있음에도 그렇지 못한 선택을 한다. 그 순간의 쾌락을 위해 릴스를 보고, 잠을 더 자고, 술을 마시고.

 

나에게 최고의 선택은 어떤 이에겐 차선의 차선의 차선책일 수도 있다. 누군가의 최고의 선택은 나의 버려진 억지로 선택한 선택지일 수도 있다.

 

즉, 선택의 중요도, 고저는 절대적이지 않으며, 그 순간, 그 시기의 "나"의 상태에 따른 감정과 가치관에 따른 순간의 기분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 순간의 기분에 대해 너무 많은 걱정을 쏟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 그러면, 지금 이 선택을 하면 넌 000 된다.

 

미래를 알게 된다면 어떨까?  영화처럼 우리가 어떠한 선택을 할 때에 결과를 알고 선택을 한다면 우리는 삶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살까? 

 

선택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우리는 더욱 인간답게 살고 있다. 우리가 영화를 볼 때 주인공을 각자를 다른 삶으로 생각하지만, 서로 다른 주인공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 내가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이러한 선택을 하든, 저러한 선택을 하든 다 나의 삶이며, 온전한 주체로서의 나다. 과연 내가 과거에 그 선택을 했다면 지금 이 순간과 같은 생각을 했을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너무 많은 걱정, 너무 많은 고민 없이 현재를 열심히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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